톺아보기의 첫 호의 주제는 ‘시작’입니다.
지난해였던 2023년 여름, 봉사활동을 갔던 라오스 푸른 하늘 배움터와의 시작을 함께한 설립자 김봉민 선생님과 30분 정도 대화를 나눴습니다. 푸른 하늘 배움터를 만드시게 된 계기, 봉사란 무엇인지 등 뜻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푸른 하늘 배움터는 한국인 김봉민 선생님이 라오스에 설립한 학교입니다. 유치부부터 5년 과정의 초등부, 7년 과정의 중고등부가 있고, 학생 수는 80개 학급에 1,200명에 이르죠. 처음 학교를 만들 땐 170여 명에 불과했지만, 소문이 나면서 학생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2002년 농장에서 일을 도와주던 어린 친구들과 함께 야학을 시작해 이후 현지 정부에서 인정받는 학교가 된 푸른 하늘 배움터를 만드신 김봉민 선생님을 만나러 가 볼까요?
첫 해외, 첫 교외자원봉사 무엇 하나 경험해 본 게 없었고, 사전 활동부터 허둥지둥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 만큼 처음으로 배운 것, 경험한 것, 제 또래들은 경험하지 못할 것들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사실 이 프로그램을 지원하기 전, 사전 활동 중에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입이 얼마 남지 않은 고등학생이었고, 따라서 주변 어른들께서도 걱정이 많으셨거든요. 고등학생인데 공부 안 하고 뭐 하니, 그런 건 성인이 되어서도 할 수 있다. 등등 큰 우려가 있었지만, 제 가슴이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너는 두고두고 후회할 것이라고요. 저는 머리보다는 가슴이 말하는 대로 가는지라, 결국 포기하지 않고 가기를 선택했습니다. 새로 만난 단원들은 누구보다 이 일에 열정적이었고, 무엇보다 제가 이 활동을 기획하고 준비할 때 심장이 뛰었습니다.
그렇게 설레는 마음으로 간 라오스에서 만난 친구들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욱 밝고 사랑스러운 친구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교육자료와 키트를 가지고 봉사를 하러 갔지만, 실제로는 현지 친구들과 노는 것에 더 가까웠습니다. 내가 준비해 간 것을 친구들에게 소개해주면서 함께 어울리는 기분이었죠.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활동에서 서툴고 우왕좌왕하던 일이 생각나 제가 준비한 수업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설립자님과 만날 기회가 생겨 이야기를 나눠 보니 “한두 달 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 채 안 되는 기간으로 무언가를 가르쳐주고 잘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 애들이랑 같이 놀면서 새로운 만남과 함께 추억을 쌓는 게 봉사지 무엇이 봉사겠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게 위로가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깨달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번 ‘꿈과 사람 속으로 해외 자원봉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고, 현지 친구들과의 인연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20살이 되면, 다시 한번 푸른 하늘 배움터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고 싶을 것 같습니다.
김봉민 선생님과의 인터뷰
Q. 푸른 하늘 배움터를 만드시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A. 라오스로 여행을 왔다가 현지에서 일을 배우게 되었고, 이후 라오스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없을까 하다가 야학으로 시작을 하게 되었지. 한국에서도 중학교 2학년때부터 야학을 하면서 한글을 가르쳤어.
Q. 처음에 라오어를 배우실 때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A. 처음에 외국에서 좀 오래 살았어 (웃음)
Q. 상대적으로 언어를 받아들이기가 더 쉬우셨겠네요.
A. 아무래도 그렇지. 선생님은 영어를 문법을 갖추는 영어가 아닌 말하기 위주로 배웠으니까. 그래서 우리 학생들이랑 대화하면 애들이 잘 못 알아들어. 애들은 여기에서 문법적으로도 공부하니까. 그런데 선생님은 외국 돌아다니면서 기억을 한 거지.
Q. 한국은 가신지 얼마나 되셨어요?
A. 자주 다니지. 이번 봉사 끝나고 다음 달에 다시 한국 갈 거야. 3~4개월에 한 번 가는 거지.
Q. 여기에서 활동하면서 봉사의 느낌이 아닌 놀러 온 느낌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A. 그게 봉사인 거야.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닌 비를 같이 맞아주는 거라고 그랬어. 그게 여기 와서 같이 놀고 그러는 거지. 우리가 여기 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 굉장히 제한적이지 언어가 안 통하는데 뭘 가르쳐. 그저 같이 놀고 뛰어다니고 이러는 게 진정한 봉사지. 같이 놀아주는 것 이상 더 좋은 게 뭐가 있겠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말이 안 통하는데.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어렸을 때 미국 선교단체들이 와서 놀아주고 그랬어. 뭐 그 사람들이 다른 것들도 주고 그랬겠지. 근데 그런 건 시간이 지나면 생각이 안 나. 그 선교사가 나를 업고 뛴 게 생각이 나. 그래서 다른 봉사단 와도 그 이야기를 많이 해. 같이 뒹굴고 놀고 하는 게 가장 기억에 남는 거라고.
Q. 이렇게 함께 어울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 같아 아쉬워요. 이제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네요.
A. 아니야 다음에 기회가 있잖아. 이런 거 한번 해외 봉사활동 하면 기회가 많이 있어. 나중에 다른 곳에서 봉사할 때도 이번에 얻은 깨달음이 도움이 될 거야. 또 가서 무엇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민족의상 입고 사진 한번 찍는 게 더 귀하고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거지. 이런 거 어디 가서 입어보겠어. 여기 와서 가능한 거지. 결국 그런 것들이 남는 거야
Q. 저는 항상 돈을 많이 벌어서 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A. 내가 돈을 벌어서 해야 해야겠다는 건 힘들어. 많다는 기준이 어디 있을까?. 조금만 가지고도 할 수 있어. 선생님은 학교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어렸을 때부터 했었어. 근데 현실적으로 한국에서 하기 힘드니까 여기로 와서 한 거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야 작은 유아원 같은 거 해서 아이들 가르치는 거지. 적은 돈으로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 나는.
Q. 20살 되어서 다시 찾아뵐게요.
A. 응 꼭 와. 내가 한국에서 해봤는데 여러 가지 여건이 힘들다 싶으면 제3 국에 와서 해보는 것도 고민 한번 해봐. 라오스 지방에 가면 굉장히 열악하거든 교육환경이. 근데 내가 가서 전체적으로 바꿀 순 없더라도 그 지방의 교육환경이라도 개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보람이지.
Q. 그렇게 하려면 언어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 영어도 못 하는 처지라서요. 하하.
A. 그건 현지 가서 해결할 부분인 거고. 기본적으로 의식이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 언어를 모르는 다른 나라로 가서 내가 라오스에서 무언가를 하겠다 하면. 여기 와서 언어를 배우면 돼. 한 1년 정도 하면 의사소통은 해결이 되니까. 언어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아. 자신이 확실한 목표, 의지를 다지고 살면 다 잘할 수 있어.
Q. 일부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에게는 등록금을 받으시고 그 돈을 다시 다른 어려운 곳에 보내서 도와주신다고 들었어요. 처음엔 선생님 자신만을 위한 돈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나시지 않으셨나요?
A. 근데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돈으로 막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어. 좋은 차, 골프, 다 싫어. 간단히 말하면 선생님 자체를 하향 평준화를 시킨 거야. 여기 사람들이랑 똑같이 갈려고 마음을 먹어. 그러면 돈 쓸 곳이 없지. 평준화를 시켜놓은 거야 나 자신을. 그러면 편하지.
예를 들어서 나 자신을 상향평준화를 시켜버리면 평생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상황이 되잖아. 눈높이를 여기 사람들이랑 맞춰놓고 사는 거거든? 그러니까 이게 삶에도 편안하지. 그렇다고 너는 행복하지도 않냐고 그러면, 내 안에서 이걸 가지고 행복을 찾는 거야. 아 이 사람들이랑 똑같이 살아가면서, 여기 사람들과 평범하게 눈높이를 맞춰 가면서 사는 것도 행복이다. 그런 거지. 하고 싶은 게 그렇게 없어. (웃음)
Q. 여기에서 정말 많이 배워가는 것 같아요
A. 중요한 것은 여러 가지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할 것 같아.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선생님은 그게 정말 중요할 것 같아.
오현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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